1.
처음부터 남자가 인어 따위를 팔며 생계를 유지했던 것은 아니었다. 육지 끄트머리, 바다와 맞닿아 있는 작은 마을에는 벌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고, 남자는 뱃멀미를 했으며… 인어는 소리를 좋아했다…. 그래, 소리….
그러니 남자가 인어를 잡아오는 방식은 다른 사람이 우연찮게 그물에 걸린 어린 인어를 싼 값에 넘기거나,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면 모여드는 인어를 한 마리씩 데려오거나 하는 방법이 고작이었다. 무식하고 고전적인 방법이 따로 없다. 그러나 남자는 악인이 되기에는 그리 심성이 나쁘지 않았고 완전한 선인이 되기에는 위선적이었다. 비효율적인 방법으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인어가 남자 외에는 경계하여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에.
인어들이 무엇을 알아보고 남자에게만 모이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알아보는 것 또한 귀찮았다. 나태한 어부는 물고기가 아닌 사람을 낚았고, 신을 섬겼고, 가끔 회개했다. 그게 전부였다.
남자는 바퀴가 달린 욕조 세 개를 끌고 다녔다. 바닷가에 가 말도 하지 못하는 인어와 눈을 마주치고, 가끔은 먹이를 내어주고, 따라올 법한 인어가 있다면 욕조에 담아 끌고 갔다. 남자는 간간히 그들이 참 멍청하다는 생각을 했다. 돌아오지 않는 동료가 있다면 소문이 날 법도 한데, 이 순진한 인어들은 이 주에 한 마리씩은 꼭 남자를 따라나섰다. 나섰다? 그들에겐 다리가 없으니 그리 적절한 표현은 아닐 수도 있겠다. 아무튼, 그들은 육지에 동조했다. 어쩌면 육지에 대한 동경이 그들 사이에 퍼졌을 수도 있겠지. 그러니 남자가 건진 인어들은 어른들의 조언을 무시한 채 위험한 여행길에 따라나섰다 실종되는 틴에이지 정도일 수도…….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잡아온 인어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팔려나간다. 보통 관상용, 아니면 … 어떤 여자가 사갔다. 이렇게 두 가지. 보통 미형인 인어들은 전자로 팔려나가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여자가 연락을 받고 가져갔다.
"식용으로 드시는 건 아니죠?"
"설마요."
그건 식인같잖아요. 그래도 하반신은 생선과 같으니 신기한 경험은 될 수 있겠네요. 여자가 농담을 하며 인어의 상태를 체크했다. 남자는 딱히 매장을 내어놓고 인어를 파는 것은 아니었으니 둘은 항상 자택에 딸린 연못에서 조우하곤 했다.
말은 하지 못하더라도 비명은 지릅니다. 별로 먹고 싶진 않을 거예요. 남자가 쭈뼛거리며 대꾸했다. 여자는 작게 웃으며 그렇군요, 한다. 이내 노크식 볼펜의 심을 딸칵, 하고 집어넣더니 수표를 내민다. 이한 씨 덕분에 저희가 많은 덕을 봐요. 그 사실만은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여자의 눈동자는 구분 없이 새카맣고, 깊다. 어쩐지 바다를 닮았다는 생각을 한다. 바다는 어쩐지 조용하고, …
2.
"좋아요."
남자는 한번도 하모니카가 다른 악기보다 훌륭하다거나, 아름다운 음색이라거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하모니카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는 그게 주머니에 들어가는 사이즈기 때문이다. 편리성. 그게 전부였다. 그랜드 피아노를 어깨에 둘러메고 연주를 다니는 연주자는 없으니까.
"뭐라고요?"
좋아요, 다시 한번 누군가가 입을 벌려 말했다. 좋아요, 보다는 조아여, 에 가까운 발음. 벌린 입 안에는 아가미 틈새 같은 것이 벌렁거렸다.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남자가 인상을 썼다. 하모니카를 불던 남자가 연주를 멈추고 헛웃음을 쳤다. 저기요, 이거 장난치는 겁니까? 묻자 대꾸하지 않는다.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말은 하지 못하더라도 비명은 지릅니다. 그런데 이제는 말을 하고 비명을 지르는 … 인어, 가 남자를 바라본다. 인간, 같았다.
3.
"언어를 가르치고 있어요."
"누구의?"
여자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인어를 턱짓으로 가리킨다. 하던 일에 대해 설명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가…. 남자는 맹한 얼굴로 인어를 마주 보더니 이내 생각을 거두었다. 인어의 언어라, 말장난 같네요. 이내 대화가 끊긴다. 여자가 대답을 듣고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남자의 이런 깊게 묻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비용만 치르면 그 외에는 상관없다는 듯한….
남자는 느긋하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다시 묻는다. 인어가 본디 말을 못 하는 구조인가요? 여기서는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을 했다. 묻지 않는 것이 남자의 장점이라 생각했기에. 이론상 가능하지만, 어쩐지 잘 안 되더라고요. 그들이 전부 죽어버려서 교육하지 못했다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남자가 가라앉은 눈으로 인어를 바라보았다. 물장구를 치는 인어를 오래 마주 보던 남자가 입을 연다. 어떤 인어가 내게 좋아요,라고 했어요. 처음에는 당신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습니다.
여자의 새카만 눈동자가 한바퀴 천천히 돌더니 가볍게 휘어졌다. 어디 있는데요? 그건 왜요? 사려고요. 배를 갈라 해부할 건가요? 그건 이한 씨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죠. 나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그 인어들 다 살아 있어요? 남자의 대꾸에 여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제가 설마 죽이기라도 했을까 봐요? 그런데 왜 이제 와서 그런 걸 궁금해 하시나? 애초에 남자의 질문은 너무 때가 늦었다. 그런 의문은 진작에 첫 번째 인어를 넘기고 오백만 원을 쥐었을 때 했어야 했다. 인어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했어야 했다고 … 이 위선자야.
"말을 한다고 정이라도 더 드신 건 아니죠?" 남자가 다시 침묵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하나 아셔야 할 게 있어서요. 그들은 인간을 닮았어요. 여자가 다시 시선을 도르륵 굴렸다. 당연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표정이었다. 남자가 천천히 입안에 남아있던 말을 다시 굴린다. 인간을 닮았다고요, 디아나 님. 제 말이 이해가 안 되세요? 그들이 인간을 닮았어요. 제가 왜 당신께 이 말을 하는지 … ….
여자가 남자를 질린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남자는 한숨을 쉬더니 여자를 지나쳐 욕실의 문을 연다. 참방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붙은 여자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그야 염원하던 '말하는 인어'를 얻게 되었으니까.
욕조 안에는 여자를 닮은 인어가 꼬리 끝으로 물장구를 치고 있다. 그제야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했다.
인간, 을 닮았어요. 그러니까 … 살아있는 … 기존의 … 인간들.
4.
그러나 여자는 인간, 을 닮은 인어, 의 배를 가르지 못할 정도로 인간, 적이진 않았다.
5.
굳이 윗선을 거스르면서까지 호기심 따위를 충족하는 부류는 아니었다. 운이 좋게도 인어, 의 배는 가르지 않기로 결정했고, 여자는 이행했다. 여자를 닮은 인어가 인어를 닮은 여자를 가끔 응시한다. 우연히 닮은 종이 태어난 걸까? 여자는 과학을 믿는 만큼 우연을 믿지 않았다.
그러니 아마 우연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여자와 인어는 이어져 있겠지. 여자는 인어의 입안을 면봉으로 가볍게 닦았다. 아가미가 벌어져야할 틈새가 면봉 끝에 가볍게 걸렸다 떨어진다. 남자와 다르게 여자는 그다지 거부감을 느끼진 않는다. 뺨 안쪽에 붙은 이 세 개의 선은 수많은 해부로 기능이 증명된 것이니, 거북함을 느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정도였다. 두 개의 면봉은 얇은 비닐 안으로 떨어져 밀봉된다.
남자는 더 이상 바닷가에 나가 하모니카를 불지 않았다. 여자의 연락을 꾸준히 무시하고 숨어 지내는 바람에 여자는 반차를 내고 차를 몰아야 했다. 성가신 남자…. 기어코 여자를 닮은 인어를 이천만원에 팔아놓고는 선인처럼 굴다니. 집안은 늘 그렇듯 조용했다. 남자는 덤덤하게 여자를 맞이한다. 얼마나 걷지 않은 건지 살짝 절뚝거렸다. 하루 백 보도 걷지 않았던 게 분명했다. 남자는 불안정하게 벽에 기대어 여자를 바라본다. 다신 오지 않으실 줄 알았어요. 인어는 당신만 잡을 수 있으니까요. 남자가 키득거렸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인어를 잡지 않습니다. 왜요? 당신이 인어의 배를 가르는 걸 알았으니까. 묻지 않았으니 말하지도 않았죠.
하지만 이번엔 인어를 사러 온 것은 아닙니다. 여자가 얇은 서류를 눈앞에 툭, 던졌다. 인어와 저의 DNA를 비교한 거예요. 완전히 일치한다고 나오더군요. 이런 경우는 규격 외라 아주 흥미로워요. 남자가 묻는다.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네, 충격적이네요! 하고 과장된 모션을 취하며 웃는다. 이 사실을 알고 정말 큰 충격에 빠졌죠. 그래서 제가 가설을 하나 세웠습니다, 이한 씨. 들려드린다면 제게 협조하셔야 해요. 공범자가 되는 거죠. 왜냐하면 당신이 정말 … 필요하거든요.
남자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여자가 말을 이어간다. 인어의 하체는 제 DNA와 일치하지 않는 생선의 그것인데, 상체만 제 것과 일치했어요. 무슨 말이냐면… 어쩌면 인어의 최종형은 인간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 인간을 대체하고자 하는 형태로 진화하고 있고, 차츰차츰 인간과 더 닮은 인어들이 발견될 거라는 것. 인간의 카피 … 그래, 저는 그들을 '카피'라고 부르려고 합니다. 이한 씨, 지금까지 잡아온 인어는 누군가의 DNA를 모티브로 한 폐기물들이 아닐까요? 당신이 이제부터 더 많은 인어를 데려왔으면 좋겠어요. 대조해야 하거든요. 모든 인어가 인간의 '카피'라면, 우리는 …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
잠깐만요, 디아나 님. 전 협조 못 합니다. 말씀드렸잖아요, 더 이상 인어를 잡지 않는다고요. 남자가 불편한 기색이 되었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잖아요. 남자가 빠르게 여자의 말을 가로막는다. 아뇨, 불가능합니다. 하모니카를 불 수 없게 되어서요. 물리적으로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시간을 더 주신다면 시도해 볼 수는 있겠죠. 어쨌든 지금은 안 됩니다.
여자는 순간적으로 '디아나'나 '하모니카' 따위를 발음할 때의 남자를 떠올렸다. 입을 벌린 남자의 입 안에는 서로 눌어붙기 직전의 아가미가 살짝 드러났다. 귓가에 하모니카를 불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숨소리 같은 게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 여자는 살짝 아득해졌다.
신체강탈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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